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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회계고(百回稽古) 서문

관리자
2018.12.01 11:18 3,25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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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회계고(百回稽古) 서문
백회계고(百回稽古) 검도를 애호하는 분을 위하여 일본에서
발간된 백회계고(百回稽古)라고 하는 검도서적을 번역
연재하여 드리려 합니다.

내용은 스승과 제자간의 진하고 순수한 허물없는 관계를 검도
수련 100회를 통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스승은 모찌다 범사 10단이고 제자는 오가와 법사 9단입니다.
1954년 11월 16일
제 1회째 시작하여 당시 제자인 오가와 범사는 53세
스승인 모찌다 범사는 69세이다.

1961년 11월 5일. 100회째로 오가와 범사는 60세 모찌다 범사 76세.
1회부터 100회까지 7년간이다.
이 백회계고 검도서적을 번역함에 있어서 검도애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번역에 미숙한 부분은 많은 이해와 조언 바랍니다.
(번역: 백련검도관 원장 김홍운 4단 74세) 사제간의 흉없는 순수함.
(머리글)
1929년 5월 어대예기념(?) 무도대회에서 우승한
모찌다 모리 범사는 우승에 교만하지 않고 더욱 정진을 하고저
동경으로 돌아가 수행을 처음부터 다시하고자 결심하고.
다음해인 1930년 총독부 경찰국 사범직을 사임하고, 강담사(?) 노간
도장의 사범이 되었다.
강담사의 노간 사장이 전기 무도 대회 시합때 시합모습과 범사의
인품을 신임하고 사범으로 초대하게 되었다.
당시의 일본 검도계는 다가노(高野)범사의 수도학원,
나가야마(中山)범사의 유신관등 파벌색이 강하고 서로간의 교류
거의 행하여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와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검도의
보급발전이 저해된다고 보아서 모찌다 선생은 사범부임과 동시에
어느쪽 파벌에 속해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노간 도장에 받아 들이기로 했다.
이 계책은 대단한 공을 아뢰고, 일본 제일의 실력을 가진 모찌다선생에게
계고를 부탁드릴 수 있고 다른 파벌의 사람과도 검을 맞추어 볼수가
있다는 것으로, 계고에 참여하는 검도가들이 원근을 가리지 않고
그칠새 없이 몰려들어 노간도장을 검도계의 일대교류의 장으로써
대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모찌다선생은 검도의 무도전문학교에서 지도를 받는
나이도 범사가 물려준 원간대기(遠間大技 ?)의 계고를 노간도장에서 장려했다.
때문에 종래의 동경의 근간계고의 결점이 시정됨과 더불어 양쪽이
서로 어울려, 근대적인 이합의 검도가 퍼진 것이다.

이때 오가와 범사는 국사관전문학교에서 검도사범으로 있었지만
모찌다선생이 노간도장의 사범이 되는것과 동시에 그 지도를 받고자 했다.
오가와 선생은 그때까지 수도학원에서 다가노범사로부터 사사하면서도
여러선생으로부터 지도를 받고 파벌에 치우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그것 때문에 주위에서는 절조(節操))가 없다고 말들이 있었지만 파벌을
초월한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때문에 오가와 선생이 노간도장을 찾아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와같이하여 노간도장(1952년 부터는 묘의도장)에서 모찌다선생에게
계고를 부탁드리고 있으면서 오가와선생은 점점 모찌다 선생에게
경도 되게끔 되어 버렸다.
천하일품이라고 말하는 모찌다선생의 기술이 굉장함과 강하고
기품있는 검품은 물론이지만 그것보다는 강하게 마음이 이끌린 것은
모찌다선생의 인간성과 삶의 태도였다.
오가와선생은 당시, 노사(老師)로부터 참선이수 즉 선의 수행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일체의 명리를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검의 길에
정진하시는 모찌다선생의 모습에서 선의 마음을 발견하고 깊은
감동을 깨달았다.

모찌다선생의 인품을 나타내는 에피소드는 많이 있지만
그 하나를 열거하면 1957년 검도 10단제가 되어 그 최초의 10단으로
재촌선생, 모찌다선생 오가와선생, 나가노선생 네분의 범사가 승단되었다.
모찌다선생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사람들은 스승의 10단 승진을
경축하고 묘의도장에서 축하회를 열기로하였다.

계고 종료후 곧바로 축하회의 준비로 들어가고 사전의 계획대로
적당한 때를 보아 10단의 면장을 지참한 분이 도착하고
그때 처음으로 그때까지 비밀로 하였던 내용을 모찌다선생에게
말씀드리니까 선생께서는 면장을 펴보지도 않고, "나에게는 이와같은
것을 받을 실력은 없습니다.
나는 아직 수행의 도중이므로 갈길이 멉니다"라고 말씀하시고
면장을 옆에 내던졌다.

선생께서 면장을 받으시는 것을 계기로 축하연을 시작하려고
하던 관계자들은 어찌할줄 몰라 참으로 몹시 난처해 했다고 한다.
이 한가지 경우에서도 모찌다선생께서 명리(名利)의 염원이 얼마나
엷은지 이해되는 경우이다.
이와같은 모찌다선생의 바른 사고방식에 공명하고 있던 오가와선생도
결국은 10단에 오르지 않았다.

물론 10단 수심의 자격은 있고 매년마다 신청을 하도록 주위에서
권유드렸지만 한번도 지역검연의 추천에 승낙하지 않았다.
10단이라고 하면 최고단위이며 그보다 위는 없다. 곧 모든 것이
완성 되어진 인물에 대하여 부여되는 것이다.
하지만 검도가 인간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완성되어진
인간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것일까 "석가모니도 지금도 수행중"이며
도의 수행에 끝이 있을리 없다.

모찌다선생도 오가와선생도 이와같이 생각한 것이 아닌가.
"인간이 인간에게 최고의 것을 부여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8단, 9단 마저도 그 지위에 안주하고 수행에 소홀함이 되어 버리므로
그러하다."라고 오가와선생의 말씀이 이를 뜻해주고 있다.
모찌다선생은 노경때 자기의 수행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고 있다.

"나의 검도는 50세를 넘어서부터 참된 수행에 들어갔다.
마음으로 검도를 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60세가 되면 다리-허리가 약해진다.
이 약한 것을 보강하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을 활동시켜서 약점을 강하게 되도록 노력하였다.
70세가 되니까 신체 전체가 약해진다.
이번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수행을 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이 이쪽의 거울에 비쳐진다.
마음을 조용히 움직이지 않도록 노력했다.

" 1954년 11월 오가와선생이 100회계고를 꺼냈을 때 모찌다선생 69세
였으며 때마침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수행"에 전념하였을 때이다.
오가와선생은 이때 53세 "검은 마음이다,

선도 마음이다."라고 검-선 삼매로 마음을 연마하는 수행에
근신에 있었으므로 스승의 제자는 정말로 "내 뜻대로 되었다"는
생각이였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오가와선생은 언제나 "올바른 스승을 얻으면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며
도의 수행에는 정파의 스승에게 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였으며 오가와선생으로 써는 모찌다선생은 틀림없이 검도에
있어서 정파의 스승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어떤날 묘의도장에서 젊은분들이 모여서 "오가와 선생은
약하니까 얼마든지 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모찌다선생이 지긋이 웃으시면서 듣고 계시다가 "여러분들은
무슨말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선생의 계고를 거의 전부알고 있지만 오가와상처럼 검리에
맞게 계고를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라고 단호히 말하였다.
이말에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고 한다.
또한 모찌다선생이 돌아가시기 두달전 오가와선생이 스승의 병상을
방문하였을 때 선생께서는 "오가와상 당신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이 말씀을 듣고 오가와선생은 감격으로 가슴벅찼다고 한다.
진정한 사제동행. 간담상조한 사제간의 순수하고 강한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제 숨을 내쉬고 마음과 마음의 검도를 세우신 양범사. 백회계고.
과연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검도시대편집국장 小澤 誠. 1.
최후의 검도라고 생각하고 합장의 마음으로 임할 것.

# 검은 타격만이 아니고 생명을 주기도하고 자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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